++
by 근엄자
카테고리
이글루링크
(주) 활력을 마시다. ..
엉금엉금 가짜거북
[이불을 걷자] 구구한..
자그니 블로그 : 거리로 ..
평범한 블로그
觀鷄者의 망상 공간
魔王宮 ~ 勇士出入禁止區域
matsuhara의 임시 피..
Peace of Mind
SabBatH
잠보니스틱스
naisis lv02
天體觀測
Voice Love ♡ Boys ..
들풀.넷
외날개 히요Heeyo
餘分D: physics and fun
히미코의 사마대제국
프리스티
無限雜談空間
건스의 다락방
Null Model
꿈꾸는 풍경
明과 冥의 경계에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스트..
11th fear
myheart
Mirinae's Into the Gal..
LONG10's Miracle World.
루리 이야기 非
머나먼정글 잡설록 (폐..
WALLFLOWER
생각, 생각, 생각할지..
음....할말이 없네
人生無想 の 世界
초자공동체의 千像萬想
한 여름 밤의 꿈
달의 끝을 보고 있었다...
우정이상 에로미만
eggry.lab
임근준(이정우) | lefto..
음주가무연구소
세라복萌 - 리라 하우스..
v e r . b e t a
cre-Inside
F1 입니다요
일상 생활 속의 파편들
요아킴의『환상 소나타 : ..
腦香怪年의 코카찌꺼기 ..
-
Remake
일반인 접근금지!
그런 거 음슴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은..
외계인공간(外界人空間)
positive and negative
블루시드의 No more tro..
Nativity in Black
쾌속고양이의 게임 일기
말하자면 問答無用
백금기사의 기묘한 연구소
긁고, 흔들고, 때려!
충동에 굴하는 파벨 라이프
問答無用
relena
스노우 씨의 거주지
대중문화 웹진 『컬처밤』
노박사의 지식공작소
후박사 스토리
▶ZAKURER™의 건..
RNarsis의 다락방
『Seia, 꿈꾸고 사랑..
나타스의 슬리핑룸
폭력 어덜트레인저 우주모함
닫음
midikey's 95%
카레의 세계정복 베이커리
인공달
iD@CKSTER
musiccamp
왜냐면 그 편이 로맨틱..
READ OR DIE
Gentlemen! Welcome to..
百合死藥堂-순수 100% 약..
박애주의 미소녀연맹
Wet lowland
달빛은 사랑의 메시지...
Katz! Yellz!! Yeah!!!
일상의 흔적
서린언니의 배경연구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
Ubiquitous Fantastic ..
a quarantine station
Chainsaw Edge Roma..
절대! 좌절 금지!
권총과 전함
Dr.Overworks′ lab in..
靑狼派
초록불의 잡학다식
Arvid\'s Blueprint
水花의 工房
느리게 걷기 가까이 보기
잡식성 만화섭취 공돌
Nothing is Everything.
뭐랄까..
.
과학요새연구소
SeaBlue in Parise
TokkoVanessa의 ..
I am NOIDEA.. or I h..
단세포 청년의 늑대굴
레여의 블로그-환상종 ..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流星獅子 - Ryusei Lion
Ladenijoa의 여러가지..
글 쓸 생각 있어요?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Or..
묵색 혹성
Cafe Ljubljana
무하유의 향 [無何有之鄕]
Under the Violet Moon
5년째 공단의 타이틀
品절
df
woody's film review
Be Human
나르사스의 취미 무쌍
Faith, hope and Char..
게렉터블로그
Dancing Apollon, d..
닥터를 전파하라
Vera Icona
동키군 날아봅시다.
解鳥語
노바디 세상
Jack or Dan
Gravitatelyh1999
直訴
도라지 타령
녹아내린 바람의별의 얼음집
Vol de Nuit
dans les mensonge..
Kindred Spirits - 빨..
dcdc의 잡담창고
Model ISLAND 2013
June Bug
Myself am Hell
The Cubic Area of A.K..
Mortui Vivos Docueran
Kumeta Wonder Land
疹冥行의 현대 살인마 열전
雪聖殿
아가리가 있는 것은 무섭다
제목없는 기숙사 내 쓰..
★베이징2008[ ▷차이나..
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Know your enemy
베르나데트의 블로그
루시앨의 Espacement
finnegans cake
내 멋대로 살련다.
ひるの幻、よるの夢
2 shop is 2 live
Sth About...
살짝 불편한 이야기들
파우스트 코리아
Anoxia Kim
서사
건강해지길 바라는 더스..
공무원시험 대표 이글루
芳華絶代 - Nan-a\'s H..
the Sputnik Sweethe..
makes much more se..
what else is there?
Lovos dixit
으스러진 깡통속의 정어..
라피에사쥬의 회색빛 세상
vagabond
카오리군의 무한망상연..
¡ÉSA ES LA VIDA!
안셀의 무작위공방(방..
그저그런 적절함
지난 날의 야상곡
耿君春秋
Counter-revolutionar..
Alice in Wonderland
그저 앞을 향할뿐,
Panzer Vor!
Life is bittersweet!
just enjoy
天下爲公
YPRF(청년혁명전선..
파리13구님의 이글루
총명함은 무딘 글만 못하다.
[반헤타리아 동맹]어떤..
博麗神社觀測
낮은데로
AustE's InterMeDiatE ..
wind will carry us
한단인의 빈수레
띙땅똥
백돼지님의 이글루
Santalinus의 Puja
'3월의 토끼집'
迪倫齋雜想
불평불만
김시덕의 전쟁의 문헌학..
yama™'s urbis
당신의 눈동자에 로켓 캔디
Sekretam chambrom p..
The Sworn Sword
뉴히스토리아
꿈의 함대
外宇宙의 유쾌한 동료들
rss

skin by 이글루스
세계 대전 Z World War Z/ 맥스 브룩스
추산 불가능한 물질적 피해와 함께 정신적으로도 영구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는 Z대전 이후 최초의 심도있는 사례보고서 [세계 대전 Z] (혹은 [브룩스 보고서]라고도 불리는 )는 출간 즉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유엔 전후 보고위원회는 공식 기록으로 채택하기를 거부한 저자 맥스 브룩스의 사례 다수에 대한 기대 이상의 열광적인 관심과, 그 대상인물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에 주목하고 이 기록들을 포함한 대규모 2차 보고서 작성을 위한 조사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다음은 UN의 공식 기록과 맥스 브룩스의 개인적 조사에 있어 당초 조사대상으로 검토되었지만 윤리적 등의 이유로 탈락한 인물들, 혹은 조사되었으나 양 기록 모두에서 누락된 인물들 몇몇에 대한 재인터뷰 사례이다.

생존자. 한국.


대한민국 청주
어두운 실내로 들어설 때마다 재빨리 구석을 훑어보며 경계하는 것은 생존자 세대 고유의 버릇일 것이다. 수차례 거절당한 뒤 가까스로 그의 저택에서의 인터뷰에 동의한 김창식을 처음 만났을 때, 조명이 거의 되지않는 방에 앉아 그가 보인 경계의 자세도 그러한 전후의 공통된 반응을 떠올리게 했다. [브룩스 보고서] 혹은 [세계대전Z]의 발표 뒤 그에 대한 재조명 열기 때문인지, 그는 이런 종류의 인터뷰에 염증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난 남들이 내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지 물어올 때만 비로소 아주 약간 신기한 기분이 들 뿐입니다. 그건 대공포라는 것이 시작된 것도, 좀비들이 지척에서 사람들을 잡아먹을 때도, 그리고 내 집이 다시 안전구역으로 확보된 것도 모두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처음 그 일이 일어났을 때는 인터넷으로 대강의 사정은 알 수 있었지만 적어도 집을 봉쇄한 다음부터는, 그리고 전기가 끊기고부터는 솔직히 바깥세상이 시체들의 땅이 되었건 걸어다니는 시금치가 지구를 정복했건 도무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오래 버티는 동안 자신이 무엇과 대치하고 있는 지도 전혀 몰랐단 말인가요?

마지막까지 버틴 때문에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시지만, 내가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지했다는 건 아닙니다. 그랬다면 일찌감치 장보러 나갔다가 그놈들의 밥이 됐을 테니. 아니 뭐, 원래부터 필요한 게 있어도 밖에 나간다거나 하는 일은 그 일 전에도 거의 드문 일이었지만요. 하지만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설마 쌀이 떨어졌는데도 가만히 앉아있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어째서 문에 바리케이트를 쌓아야 하고 인기척을 내지 않아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 내가 사는 아파트를 봉쇄할 때도 장롱을 들고 나갔구요.

물론 내가 걸어다니는 시체들에게 물어뜯기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예요. 솔직히 말해 정상적으로 살아가던 사람이라면 누가 그런 일을 진심으로 걱정하겠습니까. 처음 인터넷 포털 뉴스가 올라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분명히 교묘한 광고이거나 기담이 잘못 올라온 것이라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명백한 징후들을 볼 수는 없었을까요? 블로그의 갱신이 멈춘다거나. 구조요청이 올라온다거나 하는.

다시 말하지만 내가 집안에서 몇 년씩 웅크리고 있었던 건 분명히 그런 위협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예요. 마지막으로 컴퓨터를 쓴 건 아마도 첫 발병자가 한국에서 나타나고 2년쯤 뒤였을 겁니다. 그 때도 아직 극소수의 사이트, 그러니까 석달 째 갱신을 멈춘 정부의 비상경고 같은 것은 접속할 수 있었지만 블로그나 게시판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전기가 끊기지 않았다면 이후에 어떻게 됐을진 모르겠지만요. 그때는 냉장고가 멈춘 것보다 게시판에 글을 못 올리는 것이 더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난 한번도 완전하게 좀비들이 집 밖을 걸어다니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조리 해치우고 있다고 믿은 적은 없습니다. 100%라는 건 어리석은 겁니다. 난 여전히 밖에서 시체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세상은 여전히 평화로우며 그곳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있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나 같은 건 잊어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그 기간 동안 한 번도 언데드와 마주친 적이 없단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니 어쩌면 두어번 쯤 그럴 뻔했을지도요. 무언가가 집의 문을 두드리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도 그게 좀비인지, 아니면 우리 아파트에서 마지막으로 남았던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어떤 구조도 요청하지 않고 집에서 생존하시기로 한 겁니까?

물론 이상하게 들릴 지는 모릅니다만 당시에는 그것이 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만약 바깥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혹은 이미 좀비들은 바닷속으로 쓸려가고 (그는 이 말을 하곤 잠시 멈칫했다. 좀비들이 해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구출 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회사와 관공서가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게 언제가 되었건 사람들은 날 찾아냈을테니까요. 그리고 아무도 찾아내지 않거나 혹은 내가 지구 상에 남은 마지막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그냥 베란다에 채소를 키우면서 살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처음 생존준비를 하게 되었을 때를 말씀해주시지요.

특별히 준비한 게 없는데요.

어떻게 생존을 위한 모든 것들을 마련하셨는지 말입니다.

아파트 전체에, 그러니까 1,2층에 완전히 바리게이트를 쌓은 건 아직 이곳에 다른 주민들이 남아있던 때였습니다. 사실 난 거든 시늉만 한 쪽이었지요. 사실 그때는 조금 성급한 일이 아닌가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산더미처럼 바리게이트를 쌓아두면 나중에 치우는 일도 보통 힘든게 아닐 테니. 하지만 사람들이 뭘 하든 별로 거스를 마음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봉쇄를 하고나니, 며칠이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식량을 구하러 밖으로 나가는 눈치더군요. 그게 아마 계엄령이 떨어지고도 한참 뒤니까, 그걸 보면서 시장이란게 남아있을지 궁금했구요. 어쨌든 그렇게 나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은 것 같고, 결국 아파트 전체에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좀비들이 근처에 얼쩡거리지 않은 것도 텅빈 아파트 단지의 13층에 홀로 누군가 남아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때문일지도요.

집에는 식량이 좀 풍족하게 있는 편이었습니다. 사실, 이년치 식량이 있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무슨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대공포 전부터 나는 집에 통조림이나 생수를 쌓아두곤 했으니까요. 그래서 딱히 사재기를 할 필요도 없었고, 문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었어요.

식량을 절반쯤 먹어치우고 나자 얼마나 이렇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베란다에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갖고 있던 채소 씨와 먹다 남은 것들을 적당히 묻었는데 태반이 죽어버리더군요. 빈 집을 돌며 화분의 흙을 모아 밭을 만들어 뭔가 키워낸 건 한참 지나서였습니다. 난 내 윗집을 콩밭으로, 그 옆집을 과일 밭으로 만들고 옥상에는 호박을 키웠습니다.

수도는 상당히 오랫동안 끊기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다른 많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수도시설은 남한에서 가능한 최후까지 유지된 것 중의 하나였다. 생존자 뿐 아니라 군대의 유지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은 식수만 쓰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어렵더군요. 집집마다 받아둔 물은 몇 달이 지나니 모두 썩어버려서 농사용으로만 썼습니다. 마실 물은 빗물을 받았지만, 하늘빛이 심상치 않아서 아주 가끔, 칙칙한 구름이 아닐 때만 조심해서 빗물을 받았습니다. 그 물을 그냥 마셨다면 방사능에 중독됐을지도 모르지요. 운이 좋았습니다.

괴롭지만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드니 로빈슨 크루소가 된 기분이더군요. 언제 올지도 모르는 위협을 기다리고 있으니 더욱 그랬습니다. 아파트의 삼층까지는 세간으로 바리게이트랄까, 아니면 무더기가 가득 쌓여있었고 사실 그 아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그걸 하나하나 들어내지 않는 한 좀비들이 계단을 타고 올라올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무서웠어요. 문을 할퀴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게 몇 번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더 낙관적이랄까, 무관심해졌습니다. 어차피 마지막이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모른다면, 나는 그냥 계속 콩을 키우고 거름을 만들고 빈집을 뒤지며 살면 된다고.

선생과 같이 고립된 공간에서 버티려고 시도한 다른 사람들은, 한국에서만 수십만 명이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선생은 가능했을까요. 그것도 전쟁이 끝나고서도 한참동안이나.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이 궁해지는데, 물론 한국의 아파트는 외부를 차단하기 무척 좋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같은 경우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엄청난 운이겠군요(그는 잠시 어두운 허공을 응시했다).

그건 뭐랄까, 무척 생생한 악몽같은 겁니다. 한밤중에 눈이 저절로 뜨이고, 깨고 나서 한참은 주위를 돌아보게 만드는 악몽이죠. 그런 꿈에서는 종종 더욱 정신이 또렷해지곤 합니다. 괴물이 쫒아오면 당장 도망쳐야 한다는 공포 속에서도 어떤 길로 도망치고 주변의 무엇을 장애물로 삼아야 할지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많은 것이 무척 익숙했습니다. 뭐든지 척척 해치웠다는 게 아니예요. 오히려 난 손재주에 서투른 쪽이었지요. 하지만 베란다에 흙을 깔아 밭을 일구면서, 난 전에 분명히 그러한 일을 상상한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만약 세상의 모든 것이 끝나고 혼자 남게된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상상 속에서 내가 했던 대로 물을 받아두고, 쥐를 잡아먹었을 뿐이구요. 식량을 쌓아두고 필요도 없는 공구들을 갖고 있었던 것도 언젠가 그러한 상상이 실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난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그런 평소의 고약한 상상이 실제가 되었을 때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성공했고, 그들은 당연히도 실패했다는 것 뿐이지요. 나도 [브룩스 보고서]를 읽어보았습니다. 거기 나오는 수많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도 정말이지 한밤중의 악몽 같은 것 뿐이더군요. 자신의 아파트에서 인터넷을 하다가 좀비들이 쳐들어오거나, 잠수함을 타고 멸망이 가까운 대륙을 뒤로하는 것들, 그런 건 정말 언젠가 꿈에서 보았던 것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요, 무엇이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어요.

그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서도 한참이나 당신의 집에 갇혀지낸 거군요.

난 스스로를 가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뭐라고 할까, 단순히 누군가를 만날 필요가 없었다고 해두죠. 나는 콩을 몇 자루 갖고 있었고 물도 충분했습니다. 피자나 TV가 그립긴 했지만 그런 걸 위해 목숨 걸고 밖으로 나갈 이유는 없었죠. 아, 전기배선만 온전했더라면, 그럼 어느날 TV를 켜고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내가 그걸 믿었을지는 모릅니다만.
가끔 집 주변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불빛이 보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난 확신이 없었지요. 어쩌면 좀비들 가운데 일부가 희미한 기억을 떠올려 인간이었을 때를 흉내내는 건 아닐지, 혹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이 나 같은 생존자를 노리는 무리는 아닐지. 그래서 나는 더욱 낮에는 인기척을 내지 않고, 밤에만 조용히 빈집에서 빈집으로 움직였지요.

마침내 나를 발견했을 때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는군요. 내가 쇠파이프를 휘두를 뻔한 그 인부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만, 나도 자칫하면 산채로 묻힐 뻔했으니. 사람들은 내 아파트가 진작에 텅 빈 줄로 알고, 다 무너져가는 건물을 철거하기로 했던 겁니다.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 그 안을 수색하기로 한 게 정말 다행이었지요.

그 때 사람들에게 콩을 밟지 말라고 소리쳤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랬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국민적 영웅이 되셨죠. 하지만 돌연히 사라지셨는데.


내 생각엔 사람들은 한두해 전까지만 해도 시체들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싸웠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조금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난 절제기로 좀비의 뇌를 딴 적도 없고 소개지역으로 대피했던 기억도 없습니다. 난 그냥 콩을 심고 물을 마시고 심심하면 수음을 했을 뿐이예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달라진 건 없습니다. 난 더 이상 만날 사람도 없고, 필요한 건 배달을 시키고, 집안에서 운동을 합니다. 인터뷰를 빼면 내가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 지 벌써 몇년 됐습니다.



관리. 프랑스.

유럽연합 프랑스 자치공화국, 피에르피트 쉬르 센
국가기록원장 올리비에 르페브르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두꺼운 스크랩을 넘기고 있었다. 금테안경을 낀 호리호리한 남성은 이제 막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것 같았고, 기관의 책임자라기보다는 철야근무 중인 사서처럼 보였다. 그는 우리를 맞이하고는 먼저 보관소 한쪽의 수류탄에 그을린 자국을 보여주면서 이곳이 파리 철수작전에 일익을 담당한 곳임을 상기시켜 주었는데, 어째서 대리석으로 완벽하게 단장된 그의 사무실 대신 서류로 찬 살풍경한 공간을 인터뷰 장소로 골랐는지 알 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기껏해야 부서책임자 정도에 머무르고 있을 겁니다. 물론 이전의 간부들 가운데 생존자가 몇 계십니다만 지금은 대부분 중앙기관으로 옮겨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이전 기록의 삼분의 일 내지 절반과 함께 70%의 직원을 잃었지요. 민간인 사망률보다는 약간 낮긴 합니다만 전쟁기간 대부분의 직원이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기록관리는 물론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원장님도 그런 임무에 종사하셨었죠?

대공포 초기까지 우리에게 떨어진 지시는 대개 평소의 너댓배까지 들어온 정보 가운데 정보기관이 선별한 나머지를 다시 재분류해서 그 가운데 신빙성 있는 사실만을 추려내고, 분류해서 보관한 다음 중요한 것은 다시 군과 정보기관으로 넘기는 것이었지요. 업무량이 폭증한데다 엄밀히 말해 우리의 고유업무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실수가 많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사실 부정확한 정보를 기록에서 가려내는 작업은 요즘 우리 업무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팔랭스의 효과나 전염경로 같은 것에 대한 상당히 부정확한 소문으로 인한 혼란은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전황이 상당히 급박해지면서, 그러니까 서부 국경지대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되고 감염자수가 하루에 네 배씩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에 우리는 긴급 회의를 갖고 대응을 논의했습니다. 최우선 사항은 이 귀중한 기록들을 상당한 기간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이었지요. 공식적으로는 모두 이야기하길 꺼렸지만 사실 당시 어느 정도 이 상황이 장기화 될 것이며, 이전까지 인류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퍼져있었습니다. 이례적으로 단시간에 수립한 계획에 따라 우리는 정부의 철수계획에 맞추어 그 이전에 중요기록물의 선별과 동시에, 대규모의 기록물 이전작전을 실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 각급 행정기관의 수십년 간의 운용기록과 명령서들 가운데 최상급 보존가치를 지닌 기록을 선별해 청색지대로 이동시키는 팀에 속해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자료를 보르도로 이동시킨 직후였던 것 같은데, 국장님이 더 이상의 수송은 곤란하다고 하더군요.
“정부가 파리에서 철수중이네. 모든 차량은 피난민 수송에 동원될거야.”
그건 무척 심각한 결정이었습니다. 나는 최대한 냉정하게 국장에게 우리에겐 아직 무척 중요한 기록이 잔뜩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모두 방기하는 것은 무척 무책임한 일임을, 그리고 지금 종말의 위기에 닥친 상황에 우리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 기록들을 보존하여 인류가 문명세계의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것임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트럭 두 대만 내어주십시오.”
그러자 국장은 이미 우리에게 배정된 모든 트럭은 우리와 피난민을 실을 거라고 하더군요. 결국 나는 화가 나서 서류뭉치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국무회의록은 보르도까지 걸어서 갈 수 없습니다.”

파리시민의 대규모 철수 작전 중에 말입니까?


먼저 제가 대전 기간에 사망한 모든 프랑스 국민의 희생과 비극에 무한한 애도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그 모든 각별한 희생에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벗을 수 없는 짐을 지고 있다는 것도요. 하지만 인류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원천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건 우리 모두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한 덕분입니다.
당시 상황에서 모든 이전의 기록까지 전산화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최악의 상황에 DB자체를 복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을 이용가능한 형태로 보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기록물 대신 피난민을 한명이라도 더 차에 태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피란민의 고귀한 희생으로 보존한 기록은 우리의 문명을 힘든 시기에도 지켜내는데 무엇보다도 귀중한 도움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의 희생을 막았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유산을 유지한 덕분에 오늘날 그분들을 기릴 수 있게 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보르도는 약간은 즉흥적인 결정으로 임시 기록물 대피소로 지정되었습니다. 우선 그 지방의 수많은 와인저장고가 이용되기로 했지요. 그 보존성을 높이 산 결정이었습니다만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지하대피소로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곳에서는 전쟁말기 파리의 지하수도에서 일어났던 것의 축소판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불운하게도 그때는 이미 영불해협을 넘어 노르망디 쪽에서도 사태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나는 한 팀과 함께 한 소규모 샤토의 지하저장고에 고립되었는데, 지상을 좀비들이 장악한 동안 그 속에서 포도주만 마시며 두 달을 버틴 끝에 간신히 구조되었습니다.

구조헬기가 포도나무 대신 좀비들이 빽빽한 밭 위를 지나치는 동안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지요. 이제 인류는 다시 그 기막힌 카베르네 와인의 맛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어쩌면 포도는 다시 자랄지 몰라도 그 미묘한 태양의 맛을 다시 이끌어내는 데는 몇 세대가 걸려도 모자랄 거라고 말입니다. 그 때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음을, 내 임무는 인류가 수천년 동안 쌓아온 지식과 기술을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세계 대전 Z]에 나오는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글쎄요. 난 그 [브룩스 보고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극적인, 특별한 사연으로 가득해서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기록으로는 가치가 떨어집니다. 인터뷰들만해도 하나같이 절제되지 않는 감정의 폭발과 작위적인 문장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난 그 가운데 상당히 많은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요 관련자들의 증언을 밀접하게 확보한 점은 인정하지만, 그 상당수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데 인터뷰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당시의 기록들에 대해 행하고 있는 선별기준에 따르면 [세계 대전 Z]의 내용 다수가 제외될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초기의 상황에서 그처럼 공포가 확산되고 사회시스템이 급격하게 붕괴된 데에는 사람들이 이 사태에 전혀 무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유사한 상황, 즉 헐리웃의 삼류영화가 양산한 공포를 현실에 대입한 데에도 크게 기인합니다. 그러나 [브룩스 보고서]에는 그런 사람들이 ‘좀비창궐’이라는 데 지니고 있던 선입견이 사태를 확대재생산한 사실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지요. 앞서 말했듯 이 기록들은 상당히 왜곡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 기록들은 상당히 왜곡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현재 정책, 즉 복구할 가치가 있는 기록을 최우선으로 복구하는 기준에는 여러모로 부적합한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기준인가요.

진보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앞으로 배우게 될 역사책을 생각해보죠. 아이들이 그 책에서 보게 될 한 시기의 커다란 공백, 모든 것이 전복되고 이전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았던, 무엇보다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처한 그러한 혼란의 경험은 책의 다른 모든 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질적인 느낌을 풍길 겁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정말로 지상이 죽음의 공포에 덮여있었고 사람들은 종말을 기다리며 모든 일을 멈춘 그런 때가 없었을까요? 난 장기적으로는, 그러니까 우리보다 멋 훗날 사람들은 이 일과 흑사병이 휩쓸던 과거의 시기를 특별히 따로 구분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병균이라는 예기치 못한 우발적인 요소가 우리의 역사를 뒤흔든 시기를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지속해 온 것은 뭐겠습니까? 그건 과거입니다. 대전 이전에 우리가 누려온 것, 불완전하지만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었던 그 시기를 복원해 내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할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정확하게 그 시기를 구성하고 있던 기억들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전 과거로 돌아갈수록 우리가 앞으로 전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얼마 전 한 유럽연합 의장후보가 국가기록원과 결탁해 과거 기록을 조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요.

아는 바 없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올리비에는 나를 새로 지어진 건물의 깊숙한 저장고로 데려갔다. 그가 냉장장치에서 꺼낸 큰 유리관 속에는 대전 전에 헐리웃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기록한 여배우의 머리가 담겨있었다. 내가 그 갓 생기를 잃은 듯한 피부를 들여다보자 올리비에는 상당히 많은 유명인사가 저택의 깊숙한 대피소에서 비교적 온전한 상태의 좀비로 발견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자랑스럽게 현재 기록원에는 이러한 유명인사의 머리나 혹은 신체 전체가 수십여구 수집되어있으며, 루브르 박물관에서 수거한 소수의 예술품과 함께 국가기록원에서 일반에게 공개될 예정이라고 했다.


노동자. 미국.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전후 미국 각지에 생겨난 ‘방어 및 생산형 복합 주거단지’의 하나인 이곳을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10센티 두께의 철문이다. 이 문을 통과하고 보안단계를 두 번 더 거친 후, 체온검사를 통과하고서야 겨우 거주지역으로 입장이 허락되었다. “의례적인 절차라기보다는” SIR로 무장한 경비원이 메건 웨스트가 기다리고 있는 면회소로 안내하며 말했다. “이 근처에는 아직 놈들이 종종 나타나기도 합니다. 늪지대나, 해변에서 걸어 나오는 거죠.” 나는 좀비들이 순순히 몸수색에 응할지 약간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몸수색을 통과한 뒤 메건 웨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

전쟁 전에 난 가끔 마이애미에 사는 사람들을, 특히 호숫가나 늪지 바로 옆에 집을 지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도대체 저 사람들은 뭐하는 거지? 언제 악어가 나타나 정원을 돌아다닐지 모르는데. 아담한 경치에 그런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나? 하구요. 그러니 내가 이곳에 정착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요. 하긴 요즘 세상엔 악어를 모른 척 하는 것처럼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시체들을 애써 무시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난 뉴욕에 있는 작은 인터넷 업체에서 접수일을 했어요. 부두하역 감독 일을 하던 아빠와 엄마는 고향인 뉴저지에 살고 있었구요. 궁핍하진 않았지만 내 힘으로 대학을 다니고 싶었기 때문에 당분간만 일을 하는 거였죠.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좀 더 많은 파티에 가고, 멋진 남자도 사귀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 인생의 가장 좋았던 때를 좁은 사무실에 갇혀 보낸 셈이니까요.

처음에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이해못하는 쪽이 훨씬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하루 종일 인터넷 뉴스를 보며 게시판에서 죽치는 사무실의 몇몇도 그랬지요. 그 수많은 UCC와 뉴스속보, 긴급방송에도 불구하고 그걸 모두 어떤 기막히게 잘 꾸며진, 감쪽같으면서도 거대한 장난으로 여긴 거였죠. 난 그들이 멍청하다고 비난하고 싶진 않아요.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일이어서 깊이 생각할수록 더욱 믿지 못하게 되더군요. 누군가 뉴스를 보며 이렇게 말하던 게 기억나는군요. “이봐요 메건, CNN이 조지 로메로를 사장으로 앉혔나봐요.” 그는 취해서 그렇게 낄낄거렸습니다.

하지만 난 조금 걱정이 됐어요. 내가 매일 들르는 카페에서도 날마다 단골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었거든요. 언제나 똑같은 메뉴를 사러 들르는 경찰관 둘이 있었는데 어느날 한 사람이 보이지 않더군요. 동료한테 그의 안부를 물었더니 무서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하더군요. “아가씨, 지금 당장 뉴욕을 떠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는 가버렸죠. 나는 집으로 돌아와 TV를 켜고, 긴급뉴스를 한 시간 동안 보았습니다. 사실 모든 채널이 다 비슷해서 다른 걸 볼 수도 없었죠. 그리고는 곧장 짐을 챙겨 터미널로 향했죠. 다들 말렸지만요. 내가 곧 돌아올 거라고 놀리던 친구들이 기억납니다. 그들 대부분이 용커스 전투 때까지도 그곳에 남아있었지요.

하지만 이미 뉴욕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걷는 것 외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운 좋게 차를 얻어탈 수 있었지만 얼마 못가 고속도로에서 꼼짝 못하게 되더군요. 난 집에 전화를 걸려 했습니다.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요. 정말 겁이 났습니다. 부모님과는 도저히 연락이 안되고, 집에 까지는 며칠을 걸려 걸어가야 할지도 모르고, 내가 유일하게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고모는 시카고에 살고 있었는데 오히려 내가 안심시켜드려야 했습니다.

이틀 뒤에 나는 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했죠. 너무 멀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는 방향에서, 그리고 그 반대방향에서도, 사방에서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어요. 완전히 넋이 나간 몇몇이 들려주는 황당하지만 소름이 끼치는 경험담을 듣고서 나는 피난선이 기다리고 있다는 해안 쪽을 향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쿠바로 가신 겁니까?

당시는 아직 쿠바가 우리의 적이고, 좀비보다도 끔찍한 일이 기다리는, 그렇다고 믿는 땅이었습니다. 나는 해안에서 끔찍한 고생을 한 끝에 가까스로 한 컨테이너 선에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좀비는 두 번 마주쳤죠. 해변으로 가다 한번, 해변에서 걸어 나오던 녀석을 한번. 내가 마지막 자리를 차지했을 때 나를 바라보던 한 늙은 남자의 눈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군요.

연안에서 머물던 배들이 자주 바다로부터 기어 올라오는 좀비에게 습격당했기 때문에 배는 점점 공해상으로 나가서 그곳에서 동력을 끄고 표류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일주일 정도면 우리는 다시 육지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죠. 하지만 몇주 뒤엔가 용커스 전투가 있었고, 우리는 절망한 사람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우리 배로 몰려오기 전에 행선지를 정해야 했습니다. 나는 계속 부모님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병에 쪽지를 넣어 해변으로 던졌습니다. 연락처를 적어서요. ‘아빠 엄마, 저는 안전하답니다.’

우리 대부분이 기껏해야 마이애미나, 혹은 멕시코로 갈 거라고 믿었는데 부두의 쿠바국기를 봤을 때는 모두 충격을 받았지요. 배에서 뛰어내린 사람도 간혹 있었습니다. 모두가 어째서 하필 이곳인지 궁금해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쿠바가 그렇게 빨리 결단을 내려준 것이 고마울 뿐입니다.

두렵지 않았나요? 쿠바에서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세계 대전 Z] 같은 걸 본 사람들은 마치 우리 미국인이 무지막지한 압제에 노예처럼 다뤄지고 쿠바인들에게 착취당한 것처럼 생각하더군요. 한 달 가까이 소독약에 범벅이 되고 수용소에서 입국을 기다리는 동안은 정말 그런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만 쿠바에서의 생활은 솔직히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죠. 적어도 처음엔 그랬어요. 난 여자인데다 흑인이고, 그래서 부당한 대우가 뭔지 아는 편입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는 쿠바인의 접시를 닦고 그들의 오물을 치워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정말로 불공평한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던 건 아니예요.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반대의 상황에서 우리가 그들이 해준 만큼 너그러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어쨌건 우리는 아무도 원치 않은 손님이었고, 그들로선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 거였을 테니까요. 적어도 내 생활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시내의 카페에서 일했고 밤에는 정해진 수용시설로 돌아오는 생활이었으니까요. 오히려 그들의 생활을 바꾼 것이 우리 미국인들입니다. 달러나 금을 잔뜩 싸 온 신사가 아바나에 고급 주택을 짓기 시작했고, 맥도날드가 생겼고, 벤츠가 달리면서 내가 처음 왔을 때 알고지낸 쿠바인 가족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더군요.

미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뚜렷하게 그래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난 F6등급이었죠. 전화 받는 것 외엔 기술이라곤 없었고, 아직 어린 데다 보호자도 없었으니까요. 너무 많은 지원자가 몰려 일하던 카페에서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처지였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지요. 그래도 나름대로 저축도 하고, 심지어는 수용소 밖에 방을 마련해 나갈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인터넷을 잠깐 쓸까해서 대사관으로 갔는데 모집광고가 눈에 띄더군요. 그때가 아마 정부가 로키산맥 방어선 구축에 성공했다고 떠들 때였을 거예요. 우리는 자주 [영웅도시]같은 영화를 봤고, 처음으로 어쩌면 우리가 최악의 시기를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죠. 광고는 디스트레스(전략자원부)에서 등록된 난민을 선별해서 본토로 귀환시킨다는 것이었지요. 난 단순히 언젠가는 부모님의 소식을 알아내러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명단에 이름만 올려두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좀 더 좋은 조건의 공장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기 때문에 연락이 오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대규모 선발대에 뽑혔을 때 좀 놀랐습니다.

처음에 배치된 곳이 네바다였죠.

그때 막 청색지역으로 수복했던 작은 도시였습니다. 작은 공업단지가 있었는데 전쟁 전에는 장난감 같은 걸 생산했을 거에요. 난 대체 미 대륙 어디쯤에 떨어진 지도 잘 몰랐죠. 어느날 군인들이 잔뜩 몰려와서 열 시간 안에 준비하라고 하고는 트럭에 태워 내려놓았으니까. 난 또 다른 보호시설로 옮기는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캠프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공장 가동을 위한 준비를 하라더군요. 왠지 공짜밥을 먹는 게 껄끄러워서 일을 하게 된 것이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주일 내로 우리는 고무 풀장을 만들던 공장을 신형 방호복용 안감제조 공장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처음으로 급료가 나왔는데 사실 그곳에서 일한 두 달 동안 급료를 받은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달러화 폭락을 경험한 동료들은 정부의 계좌에 맡기기보다는 재빨리 식료품이나 담배를 사더군요. 그렇게 두 달을 보낸 어느날 밤인데, 처음 올 때 처럼 군인들이 들이닥친 겁니다. 이번에는 단 삼십분을 주는 게 달랐지만. 트럭 뒤꽁무니에서 캠프를 쳐다보고 있는데 멀리서 회색으로 꾸물거리는 게 하나 둘 나타나더니 점점 지평선을 뒤덮는게 보이더군요. 난 놀라서 트럭이 멈출 때까지 웅크리고 벌벌 떨었습니다.

다음에 일한 곳은 어디입니까? 기록에 없더군요.

기밀이었으니까요. 좀 이상하지 않나요? 좀비 스파이가 위치를 알아내 좀비 사령관에게 보고할 것도 아닐 텐데. 나는 시애틀 근처의 한 공장에 배치됐습니다. 처음에는 이전의 경험 때문에 잔뜩 겁에 질려서 이곳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했지요. 그러자 보호시설에 있던 디스트레스의 관리가 이러더군요.
“이봐요 메건, 당신이 어떤 공장에서도 일하지 않는다면 우린 당신을 명단에서 삭제하고 캠프에서 내보낼 수 밖에 없소.” 그 말은 내가 해고된다면 그 즉시 짐을 싸서 기관총 포대와 전자 센서가 24시간 감시하는 케블라 장벽 바깥으로 나가, 언제 좀비가 폐허 속에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구역에서 방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었지요. 그리고 이 공장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면, 급식소에서 나눠주는 콩죽으로 하루 두 끼를 때워야 하는 것이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그만두면 나는 그 즉시 징집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땐 이미 여성 징집이 시작 된 때였으니까요. 군대가 지켜주는 공장에 남느냐, 아니면 그 공장에서 나온 총을 들고 최전선에서 좀비 머리를 겨누느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요.

다행히도 그 즈음에는 점점 안전구역이 확장되던 때였기 때문에, 내가 있던 공장은 별다른 위협 한번 없었습니다. 가끔 감독관들이 주변 어디에는 숨어있던 좀비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가급적 작업장과 숙소 밖으로는 나가지 말기를 당부했지만 실제로 좀비를 본 적은 없습니다. 아마 그 이후로도 좀비를 본 적은 없는 것 같군요.

정말 괴로운 쪽은 일이었습니다. 공장은 전쟁 전에는 콜라병을 만든 곳이었는데 이젠 총알을 만드는 공장으로 바뀌었지요. [세계대전Z]를 보니까 보병들은 그걸 체리PIE라고 불렀나 보지만, 우리들은 그걸 브리트니라고 불렀어요. 그 소이탄의 구성물질들은 적절하게 가공되기 전에는 무척 불안했고, 공장의 엉성한 설비 때문에 자주 생산도중 저절로 불이 붙었죠. 그러면 머리털을 홀랑 태워버릴 수도 있었거든요. 물론 그건 나은 경우로, 우리 가운데 손가락이 열 개 다 완전한 경우는 무척 드물었습니다. 내 왼손 검지도 그 망할 물건이 먹어치웠죠. 감독관은 일주일 휴가를 주더군요.

항상 공장에만 있지는 않았어요. 당신도 전쟁 중에 디스트레스가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 알 거예요. 극히 작은 땅으로 쫒겨난 우리가 무기를 만들고 사람들을 먹일 충분한 자원을 손쉽게 구할 수 있을리 만무했죠. 우리 공장만 해도 당장 막대한 양의 금속과 화학물질들이 필요했는데 전 세계의 구리광산은 좀비소굴로 변했으니까요. 결국 우리가 전쟁 동안 사용한 원자재의 80% 이상은 재활용을 통해 얻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 재활용품이란 것도 대부분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위험지역에 있었지요. 적어도 한 달에 세 번은 채집활동에 참가해야 했는데, 그건 말하자면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청색지역 바깥으로 나가서는, 손으로 일일이 고철이나 쓸만한 것들을 주워 모은 다음 최대한 빨리 그곳에서 도망치는 걸 말하는 거였어요. 너무나 무서웠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우리를 지키는 군인들을 보면서 차마 빠지겠다고 말을 하긴 쉽지 않았지요. 누구고 그 일을 하길 거부했다면 아마 그는 우리 캠프에서는 지내기 힘들었을 거예요.

생활은 어땠습니까? 풍족한 편이었나요.

물가는 하루가 멀다하고 뛰어서 내 급료로는 식대와 세금을 내기에도 빠듯했지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너무 먹고 싶었지만 내 일주일치 급료와 맞먹는걸 알고 그만둔 기억이 나는 군요. 하루 일과가 끝나면 TV를 보거나 다함께 영화를 보곤 했는데, 우린 전쟁 전의 영화를 틀어달라고 했지만 대개는 로이 엘리엇의 영화나 ‘절제와 인내가 인류를 구한다’ 같은 선전영화를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전쟁 전의 무절제하고 방종한 생활태도가 인류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가 치즈버거나 엑스박스를 덜 그리워 할 걸로 생각한 모양이죠. 하지만 우리 가운데 정말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승리를 기원하면서 전시공채를 사고 기금을 모은 것도 사실이예요. 우린 밤마다 소등시간이 되면 전쟁 전에 누렸던 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곧 편안한 소파에 앉아 차가운 음료를 마시고, 깨끗한 침대에서 자게 될 거라고들 했습니다.

사실 생활이 점점 나아지긴 했어요. 얼마 안가 우리는 두세 명이 한 방을 쓸 수 있었고, 가게들이 다시 문을 열었고, 이전의 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도 늘어났죠. 요금을 내는 공용 아이팟이나 갭 야전복 같은 조금 이상한 것들이긴 했지만요. 감독관들이나 보안책임자들이 너무 멀리 나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아가씨들의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해댔기 때문에 우리는 휴일에도 가까운 위안시설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돌아오는 정도에 만족했습니다.

그 즈음에 라이프지의 표지모델로 유명한 사진을 남겼죠.

그 얼굴에 기름때를 뒤집어쓰고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멍청한 사진 말씀이군요.

전쟁 중에 [여공원의 미소]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 걸로 알려졌지요.

어떻게 그 미소가 만들어 졌는지 알려드리죠. 어느 날 사진기자 하나가 공장을 견학하고 있더군요. 익숙한 광경이어서 난 내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그가 안내원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는, 갑자기 내 옆으로 와서는 얼굴에 검댕을 칠하고 포즈를 잡아달라고 하더군요. 난 짜증이 났지요. 잔뜩 지친데다 공정을 통틀어 검댕이 묻을 일이라곤 없었거든요. 하지만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고, 그는 나와 몇 마디를 주고 받다가 재밌는 농담을 하더군요. 그리고는 사진을 찍고 가버렸어요.

요즘도 가끔 사람들이 날 알아보고는 당신 같은 위대한 Z세대 미국인의 희생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이어나가게 되었다는 둥의 말을 건네곤 하지요.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난 무척 부끄러울 뿐 아니라 화가 나요.

그런 평가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이 [세계대전Z] 같은 데서 읽은 이야기를 확인하는 거예요. 좀비떼는 정말 끔찍한 기억이었지만 우리는 똘똘뭉쳐 불굴의 의지로 마침내 승리했다는 그런 것. 그리고 그 위기의 시기에 가난한 이민노동자들이 모든 게 뒤바뀐 세상에서 A1급 인력으로서 이전에는 자신의 보스였던 사람들을 교육하면서 미국을 건국 당시의 정직한 노동이 인정받는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 세상을 구한 건 다름 아닌 그들의 노력이었다는 것. 그 따위 말입니다. 웃기는 소리에요.

물론 우리가 언제 좀비의 한끼식사로 사라질지 모르던 그 때에 그들은 정말 중요한 일을 했고, 더 많은 배급을 받고 이전에는 꿈도 못꿀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렸죠.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알기로 전쟁 전에 가난했던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고 나 같은 노동자는 여전히 한낱 노동자에 지나지 않아요. 부자들은 좀 더 부자가 됐을지도 모르지요. 전쟁 중에 공장이나 농장에서 몸에 맞지 않는 일을 했던 사람들은 이제는 다시 그들의 사무실로 돌아가서 회사중역, 변호사, 회계사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난 그런 사람들이 믿고싶어하는 이야기엔 전혀 관심 없어요.

(동석한 경비원이 인원점검시간이 다가온다고 알려주었다. 메건은 인터뷰를 빨리 끝내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는 그 안전강화조치를, 원한다면 점호로 불러도 좋다고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 밖에서 살 기회가 있으셨을 텐데요. 이곳이 마음에 드십니까?

이곳도 그리 나쁘진 않아요. 널찍한 개인공간에서 생활하며 자유시간도 많고 외출도 자유롭죠. 직장이 가까운 것도 좋은 점입니다. 깨워주는 사람도 있으니 지각 염려는 안해도 되죠. 아직은 불편한 게 더 많긴 하지만 앞으로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든든한 담장과 내가 자는 동안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을지 모를 거예요.

물론 나도 전쟁이 끝난 다음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퀸즈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집은 멀쩡했지만 집주인가족은 돌아오지 않더군요. 그곳에 들어간 첫날 밤 나는 단 한숨도 잘 수 없었어요. 내가 쓰던 침대가 너무 낮설었고, 불을 끄고 누우면 사방에서 시체들이 덤벼드는 것 같아 밤새 불을 켠 채 방안을 서성거렸어요. 결국 사흘 만에 나는 이곳으로 와 거주신청을 했어요. 햇살이 강한 남쪽지방이 왠지 나을 것 같았거든요.

물론 날 비웃으실 지도 몰라요. 월급의 반이나 되는 거주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이 감옥같은 곳에 사는 걸 이해할 수 없겠죠. 하지만 나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터운 벽 안에 살면서 가까운 공장이나 농업단지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좀비가 다시 나타날까봐 두려워하고, 관리인들은 그런 소문으로 우릴 겁주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죠. 정말 고약한 건 그런 걸 알고 있더라도 누구도 정말로 밖에서 살 엄두는 도저히 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메건은 뉴저지에 있는 부모님의 집을 되찾게 되더라도 그곳으로 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 한 남자와 이 집의 소유권을 놓고 법정에서 다투는 중인데, 그는 전쟁 중 메건의 아버지가 좀비가 되자 후견인으로서 집을 관리한 변호사에게 이 집을 상속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메건은 아버지가 전쟁 초기에 이미 사망해 그 집을 상속받았다고 주장한다.

“그 사람들은 ‘그것들’이 의사를 결정할 권리가 없을 뿐이지 걸어 다니고 음식을 먹기 때문에” 메건은 집합시간에 맞춰 서두르며 말했다. “법적으로는 행위무능력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하더군요.”


전범. 칠레.

네덜란드 헤이그
셰베닝겐 교도소가 인터뷰를 위해 준비해준 조용하고 넓은 면회실에 그가 옆에 두명의 헌병을 대동하고 앉아있었다. 나는 악수를 나누며 내 앞에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에서 ‘아라우카나의 도살자’ 라는 이름으로 '사전방역'이라는 사무적인 단어에 무시무시한 의미를 덧씌운 악마의 면모를 찾아내려 애썼다. 새치가 반은 넘는 검은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마르고 작은 체구의 중년남자는 광기에 사로잡힌 살인마보다는, 이제 막 은퇴하고 공원벤치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전 칠레육군 대령 세자르 로드리게스는 ‘진짜 콜롬비아 커피’를 가져오기 전에는 인터뷰를 시작하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세상에. 기막히군(그는 가져온 커피를 마시지는 않고 한참이나 향을 음미했다). 게다가 딴 지 얼마 안 된 거로군. 요즘도 이런 커피가 정말 나오는지 몰랐어. 이 냄새. 전쟁 전에는 아침마다 커피향기를 맡으며 깨어나곤 했지. 하지만 최고는 역시 어머니가 끓여주신 거야.

어머니는 피노체트 정권 때 투옥되신 적도 있는 분이야. 아주 가끔 어머님이 그때 있었던 일을 들려주시기도 했지. 심문, 그리고 심문, 그리고 좀 엄격한 심문. 그렇지만 난 한번도 어머니를 혁명분자나 범죄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네. 그분은 그냥 운이 좀 없었고, 지나치게 솔직하셨을 뿐이야. 그분이 내가 저지른 짓을 알기 전에 돌아가셔서 정말 다행이야.

자네가 뭐라고 썼을지 짐작이 가네. 아마도 눈앞에 있는 이 평범한 남자가 그런 끔찍한 짓을 눈 하나 꿈쩍않고 저지를 악마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거겠지. 하지만 요즘은 그런 건 애들도 믿지 않아. 자상했던 아버지가 이빨을 세우고 물어뜯으려고 달려드는 걸 본 사람들에게 물어보게나. 아니면 친절하게 저녁식사에 초대하던 이웃남자가 유리창을 깨고 당신 차를 몰고 갔다면 어떨까. 그래도 사람들의 친절한 미소를 믿을 건가. 정말 악마를 보고 싶다면 여기 앉아있는 초라한 남자가 아니라 내가 한 일을 찾아보는게 나을거야. 채 소각되지 못한 비밀명령서를 추적하고 불타버린 부락을 찾아가란 말이지.

그 일 가운데 이른바 [사전방역]이라는게 있었다는 걸 인정하시는 건가요.

재판기록을 봤을 텐데. 난 모든 혐의를 인정했네.

좀 더 명확히 사전방역을 정의해 주실 수 있나요.

우리 모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야. 그러니 말장난은 그만두게. 당신과 나 모두 ‘사전방역’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있지. 그걸 몰랐다면 굳이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굳이 알고 싶다면 쉽게 설명해주지. 여기 마을이 하나 있네. 레데커 플랜을 그대로 복사한 우리 지침서에 따르면 이 마을은 우리가 철수하여 방어하기로 한 안전구역 바깥에 있지. 군대를 보내어 지키기엔 너무 멀지만, 방어구역에서 충분히 떨어져있다기엔 너무 가까운 지역이야. 그리고 우리 철수방향과는 반대로, 그러니까 마을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 어디선가는 이미 통제를 포기한 좀비 녀석들이 몰려오고 있네. 레데커 플랜 상으로 이런 마을 가운데 몇 개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인원을 공급해주고, 최후의 순간까지 버틸 수 있도록 약간의 지원을 해줄 수도 있지. 하지만 문제는 그러기엔 너무 작거나 방어하기에는 불리한 지형이라면 우리가 이 마을에 해줄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없다는 거지. 이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안전구역까지 철수하거나, 곧 구조대가 다시 올 테니 집에서 기다리라고 하거나. 앞의 것은 우리의 수송력과 시간이 모두 부족했기 때문에 고려할 가치도 없어. 초기에는 이런 마을에 즉시 떠나라고 경고를 했어. 하지만 그랬다간 환자는 물론이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기어나와선 우리와 함께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점점 우리가 떠난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게 됐지. 두 번째 경우도 문제가 있었네. 그 사람들을 그대로 둔다면 그건 좀비의 진행방향을 따라 포기한 부락의 인구만큼 더 많은 놈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의미하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결정을 내려 본부에 알리지. 대개는 마을이 보이지 않는 지점까지 철수하도록 했네. 그럼 무전기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야. “알파. 전 병력 철수했는지 확인하라.” 만약 지휘관이나 무전병이 아직 신참이라면 대개 울먹이면서 말하지. “여기는 알파. 아직 마을에 사람들이 남아있다.” 그럼 재차 이런 소리가 울릴테고. “알파. 곧 방역 개시한다. 병력 철수 확인하라.” 그놈들은 절대로 그걸 폭격이나 공격이라고 부르지 않았어. 곧 죽어도 방역이란 말을 고집했지. 잠시 뒤면 제트기의 소음이 들리고 마을 쪽에서 불꽃이 솟는 것이 보이네. 무척 깔끔한 방법이지.

가끔은 지저분한 식으로 일해야했네. 공군이 다른 마을을 방역하느라 바쁘거나 비교적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우리는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무기점검을 하지. 그리고 부하들에게 이런 것도 물어보고.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저 마을에 사는 놈 손들어. 넌 빠져. 그리고는 그 마을의 촌장을 부르거나 대피소를 뒤져 곧 수송트럭이 올테니 광장으로 모이라고 하는거야. 충분히 사람들이 모이고 나서 우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나면 트럭의 커버를 벗기고 안에서 기다리던 기관총 사수가 한바탕 불을 뿜지. 가급적 총알을 아껴야 했기 때문에 살아남았거나 아직 집집마다 숨어있던 사람들을 처리하는데는 총검이나 야전삽을 썼어. 군견이 혹시 시체 가운데 감염자가 없는지 확인하는 동안 누군가 무전으로 이렇게 말하겠지. “여기는 알파. 방역 완료했다. 마을은 안전함.” 많은 경우 그건 나였네.

한번은 테무코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철수하고 있었지. 우린 막 그 마을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네. 그런데 한 여덟 살쯤 먹은 여자아이가 울면서 내게 부탁하더군. 부모님이 마을 밖으로 나간 다음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야. 그 아이는 성모상을 꼭 쥐고 울면서 함께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나. 나는 그 아이의 눈물을 닦아준 다음 토닥이면서 말했지. “집에 가 있으렴 얘야. 우리가 부모님을 찾아다 꼭 데려다 주마. 그때가지 절대 밖으로 나와선 안 돼.” 아이는 알았다고 하며 내 손에 성모상을 쥐어주고는 이걸 보면 부모님이 알아볼 거라더군. 난 그 아이가 집안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본 다음 무전을 쳤네. 폭탄이 정확히 그 아이 집을 때리길 빌면서.

정식으로 사전방역의 작전명은 ‘맞불작전’이었어. 그래서 처음 어떤 소방관이 산불을 끄는 법을 떠올린 거라는 소문이 있었지. 불이 옮겨붙기 전에 탈만한 걸 치우는 거. 하지만 사실이 아닐 거야. 아마도 정보기관의 어떤 녀석들이 생각해낸 거라고 확신해. 우린 뭔가 퍼져나가기 전에 막아내는 법에 익숙한 편이지. 그게 바이러스건 사상이건.

사전방역작업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칠레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지. 우리 병력으로 모든 곳을 방어하는 건 불가능했어. 더욱 심각한 문제는 좀비들에게는 국경선이란 게 없다는 거야. 우리가 국경을 봉쇄해도 녀석들은 사방에서 몰려와 부대를 분단하고 고립시키기 일쑤였지. 자네도 남미의 전체의 상황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는 알고 있을 거야. 남극으로 향하는 난민들도 사방에서 감염자를 달고 몰려왔어. 하다못해 태평양에서도 심심찮게 좀비들이 걸어 나오곤 했지. 난 우리나라가 남미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지켜진 데는 사전방역에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보네. 당신네 미군이 왜 그렇게 빨리 공군을 포기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만약 미군이 폐기한 공군전력의 1/3과 충분한 양의 네이팜탄만 있었더라면 우리는 일이년은 더 빨리 놈들을 몰아냈을거야.
난 지금 내가 한 일이 옳다고 말하는 게 아냐.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이었다고 찬양하고 싶은 생각도 조금도 없네. 잘 쳐주면 꼭 필요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 난 그냥 그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전방역 작업이 사실 마푸치 부족을 조직적으로 집단학살하기 위해 교묘하게 이용된 인종청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의심합니다. 당신은 이런 주장과 국제전범재판소의 판단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국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거군. 우리가 [브룩스 보고서]에 나오는 미개하고 잔인한 족속들에 불과하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야. ‘멍청한 중국 놈들은 내전을 일으키느라 더 바빴지. 결국 서구식 민주국가가 돼서 그나마 다행이야. 저 무식한 러시아 놈들은 군인들을 처형했군. 오 세상에, 잔인한 우크라이나 녀석들. 피난민에게 독가스를 쓰다니. 파키스탄 야만족들은 핵전쟁이나 일으키고. 유럽도 나을게 없지. 준비라곤 되어있지 않았던 놈들. 그래, 우리 미국도 초반엔 멍청한 짓을 저지르긴 했지. 하지만 우린 똘똘하게 굴었고 결국 승리했어. 몹쓸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전쟁이라 그런 거고 남아프리카 놈들이 사악한 계획으로 우릴 유혹하지만 않았다면 좀 더 인간다운 짓을 했을거야.’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가?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하지?

마푸치 부족이 그렇게 된 건 물론 안 된 일이야. 나는 자네에게 사실 통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푸치족 만큼이나, 실은 더 많은 ‘진짜 칠레인’들도 죽었다고 말해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게 뭐하는 짓인가.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차별 않고 골고루 죽였다고 자랑하길 원하진 않을테지. 아니, 사실은 그런 걸 책에 쓰는게 더 좋은가, 악마가 쩔쩔매며 변명하는 걸?

사실이 뭔지 알고 싶나. 우린 당신들 나라처럼 우리 자신을 지켜낼 수는 없었어. 우린 스마트 폭탄과 랜드 워리어도 없었고 그게 쓸모없을 때 제꺽 다른 걸 만들어 낼 공장도 없었네. 우리는 충분한 병력도 없었고 자원도 없었고 사람들을 제 때 옮길 수 있는 수송력도, 감염을 막기 위한 위생시스템도 없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린 당신네 나라가 앞다투어 받아들였던 비상조치를 시행할 능력이 없었네.
당신네의 레데커 플랜과 그 사악한 아이들, 프로흐노 계획, 창독트린, 그런 걸 생각해보게. 그 잘난 [브룩스 보고서]를 보란 말일세. 대체 그것과 사전방역이 다른 게 뭐지? 낙오된 사람들을 인간미끼로 던져두고 숨어버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들이 무방비로, 아니 절망적으로 싸우다 결국 잡아먹히기 전에 자비를 베풀어 주는 게 더 나쁜 일인가? 왜 누구는 피난민들이 가득찬 길을 폭파시키고 독가스를 풀어도 전쟁영웅이 되고 누구는 전쟁범죄자가 되는 거지? 전범이라는 것도 웃기지 않나. 이 전쟁의 전범재판에는 적군이 없어. 인종학살이라는 명목으로 아프리카나 동유럽에서 잡아온 나 같은 녀석들이 전부야. 하다못해 바이러스를 처음 만든 중국 과학자놈 정도는 같이 재판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해.

만약 나 같은 놈들을 풀어놓는 대신 인류애 정신에 입각한 정당한 전쟁을 벌였다면 지금쯤 나는 물론이고 그런 나라의 국민은 모두 시체로 변해서 결국 당신네 나라의 총알이 머리에 박혀 불태워졌겠지. 그럼 당신들은 저런 불쌍한 사람들. 결국 해내지 못했군. 우리가 저렇게 되지않아 다행이야. 그렇게 말했겠지. 그게 당신들이 [세계대전Z] 같은 걸로 말하고 싶은게 아닌가?

마푸치 족이 잘못한 게 있다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너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외지의 피난민들에게 너무 친절했던 것도 그들의 비극이지. 그들은 너무 빨리 감염됐고, 친척이나 가족들끼리 너무 가까이 살고 있었어.

국제전범재판소의 판결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나요?

내가 그 일을 했어.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야. 물론 나는 몇 번이고 ‘어차피’라는 말을 할 수 있어. 어차피 결국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됐을 거야. 어차피 그들을 놔두었다간 좀비들의 밥이 됐을 거야. 어차피 내가 안 그랬어도 다른 놈이 그랬을 거야.... 하지만 그 때 그곳에 있었던 건 다른 놈이 아니라 나였지. 바로 내가 한 거야.

하지만 사전방역과 인종청소를 체계적으로 지시한 세력이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습니다.

육군 중령 하나가 미쳐서 그 모든 짓을 벌이며 돌아다닌 거라고 믿는다면 그렇게 믿게. 우리는 잠자는 것 하나도 명령받지 않은 적이 없어. 하지만 명령은 그걸 듣는 놈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이 전쟁과 마찬가지로 그런 명령도 군인 한놈 한놈이 아니라 다같이 공모해서 수행하는 거지.

자신만 억울하게 희생당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나는 자주 부하들에게 전쟁이 끝나면 세상이 우릴 영웅으로 기억하게 될 거라는 둥의 이야기를 했지. 하지만 내 자신은 한 번도 그걸 믿은 적이 없어. 우리가 산티아고를 탈환하고 승전을 선언한 날, 나는 부관에게 말했지. “우린 이제 모두 죽은 목숨이야”라고.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아나? 그건 무너진 다리를 다시 잇는 것도 아니고 학교를 새로 세우는 것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도 아니네. 그들이 필요한 건 망각이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선 전쟁동안 우리가 저질렀던 일을 모두 잊어야하네. 내가 살아있는 한 그들은 절대 새로 시작할 수 없어. 내가 한 짓에 치를 떨며 나를 목매달고 한바탕 침을 뱉고 나면 사람들은 비로소 다시 일어서 문명을 이어나갈 준비가 될 거야. 그리고 새로운 기억을 덧칠하겠지. 모두가 한데 뭉쳐 정의롭게 역경을 헤쳐나간 그 시기로. 날 목매다는 건 전후처리의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네.

오해하지 말게나. 내가 성스러운 희생을 짊어지고 간다는 생각 따윈 하고 싶지 않으니까. 조금 뿌듯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니 참게. 나에겐 져야할 책임이 있고 그걸 지게 되니 기쁘네. 누가 나에게 뭘 시켰건 그건 조금도 신경쓰고 싶지 않아. 그놈들한테는 그놈들 나름대로의 몫이 있는거야. 내 인도명령서에 서명한 새 대통령은 전쟁기간에 나를 남부지방의 구세주라고 칭송하던 자지.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그런 작자야.

그렇다면 희생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뭐라고?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나요.

당신 정말 웃기는 작자군. 용서라구? 그걸 어떻게 구한단 말이지?
만약 내가 그들의 용서를 빈다면 그건 내가 저지른 어떤 짓보다도 잔인한 짓이야. 그건 그들을 다시 한 번 죽이는 짓이지. 이번에는 영혼까지 철저히.

이른바 [국제Z법]을 당신 같은 전범들에게도 적용하여 사면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쇼에 불과해. 말했듯이 나는 죽지 않으면 안 돼. 내가 바라는 건 내 시신을 칠레에서 가까운 태평양 아무 곳에나 떨어트려 좀비놈들 밥이 되게 하는 거야. 물론 그놈들은 시체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 건 알고 있지만, 혹시 알아? 언젠가는 나도 그놈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서 다시 칠레 땅을 밟게 될지.
나는 그놈들을 완전히 끝장 낼 거라고 절대 생각지 않네. 놈들이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날뛰고도 우리 인류를 끝장내지 못했다면 반대로 우리도 그놈들을 완전히 이 지구상에서 몰아낼 수 없을 걸세. 그놈들은 언젠가 돌아올 거고 그럼 또 누군가는 명령을 내리고 누군가는 그 명령을 따를 거야.
(세자르는 차게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의 손목에서 반짝이는 자그마한 성모상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가 있고 3개월 뒤 국제전범재판소의 선고에 따라 세자르 로드리게스의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고향인 아라우카나에 묻혔다.


목회자. 미국.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찰스턴
마이크를 들고 단상에 선 사이먼 라이트는 연신 팔을 흔들며 청중에게 열변을 토하는 중이었다. 흐르는 땀은 조명을 받아 번들거렸고 청중들은 그가 눈길을 줄 때마다 마치 눈동자 속으로 뛰어들 것처럼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전후 모든 종교가 지속적인 신자 감소현상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해마다 20%의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신흥교단 [영혼불멸의 빛]의 창시자인 사이먼의 설교를 듣기위해 모인 청중은 축구장 두 개 규모의 이층 회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날의 설교 주제는 ‘신은 우리를 시험했는가’ 였다.

먼저 몇 가지 확실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인터뷰를 허락한 것은 우리가 아무런 꺼릴 것이 없고, 진실의 문에 가장 다가서 있는 우리 영혼의 순결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타락한 대중매체들, TV, 신문, 인터넷이 우리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악의적으로 조장해왔고, 급기야는 이들의 사주를 받은 정부까지 우리에 대한 기만적인 비난을 거듭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그런 것이 아무런 장애물이 될 수 없습니다만 불쌍한 영혼들은 거짓된 소리의 달콤한 유혹에 우리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우리는 오로지 평화로운 영혼의 구원과 멸망의 극복을 위해 우리의 참 뜻을 알리기 위해 애쓸 뿐입니다. 그런 점을 유의하셔서 한오라기의 편견도 없이 맑고 투명한 눈으로 우리의 영혼과 신앙을 직시하신다고 맹세하시면 인터뷰에 전적으로 협조할 겁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우리 믿음의 길을 왜곡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면 곧바로 인터뷰를 중단할 것이고, 심할 경우 우리가 이 기록을 공식화하는 걸 저지할 것임을 알아두십시오.

[영혼불멸의 빛] 교단은 좀비가 죽지 않은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이게 일반적인 의미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우린 좀비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 시련 전 사탄의 창조물인 공포영화나 소설에서 나온 말은 우리 영혼의 그릇을 욕되게 하는 경멸적인 지칭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좀비라고 부르는 존재를 무영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영혼이 없는 몸이란 것이지요.

우리는 영혼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전쟁이라고 부르는 시련의 시기는 이 영혼의 존재를 신께서 우리에게 가장 가깝게 드러내심에 다름아니라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존재가 영혼의 구원을 나타내는 징표임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로 이들을 보며 영혼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험의 기회에 들지 못하고 영원한 타락과 고통을 향한 잘못된 믿음에 굴복하고 만 것입니다. 신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상을 망자로 넘치게 하시어 그분은 바로 우리의 삶이, 섹스와 사치, 탐욕, 질시와 편견, 고통으로 얼룩진 우리의 삶이 바로 그들과 다름없음을, 영혼이 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무영체는 신의 사자로서 간접적으로 그분의 성스러움을 대변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걸어다니기만 할 뿐 천상왕국의 영원함을 믿지 못한다면 영원히 이 연옥을 떠돌며 다른 이의 살을 탐하는 탐욕적인 사탄의 노예로 살 것임을 알리기 위해 이 땅에 왔습니다. 그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저 사악한 사탄의 노예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영혼이 없다는 것 뿐입니다. 무영체가 왜 죽은고기를 거부하고 산 고기만 탐하겠습니가? 그들은 그들에게 없는 영혼의 뜨거운 피를 갈구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죽음이 아닙니다.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련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련이 끝나고 마침내 지상에 진노하신 신의 심판이 매섭게 휘몰아칠 때, 그 몸에는 새들이 제 둥지에 찾아들 듯 영혼이 찾아들어와 우리와 함께 심판받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좀비라고 부르는 존재는 그 심판의 날에 그 이빨로서 정화한 영혼을 하나하나 저울질 해 그들이 마땅히 가야할 곳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무영체가 영혼의 심판관이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무영체는 영혼을 믿지 않는 자들의 어둡게 가려진 마음의 먹구름 저 깊숙한 곳에서 영혼을 끄집어내기 위해 그들을 벌했습니다.

무영체에게 물린 자들은 영혼이 없는 자들이란 겁니까?

대시련의 시기에 육체의 짐을 벗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에게 물어보시오. 그들 모두 어떤 믿음이건 간에 영혼이 불멸하다는 것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은 이들일 테니까. 그들이 여전히 숨쉬고 걸어다니는 것은 그들이 언제나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들이 좀 더 올바른 믿음을 갖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영혼의 존재를 믿되 그릇된 방식으로 믿는다면 천국으로 가는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대시련의 시기에 무영체의 심판을 제 몸 안에 들인 이들은 하나같이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더럽고 타락한 육체의 실재만이 유일하다고 믿은 사탄의 포로였습니다. 이들을 이빨로서 구원하여 먹구름처럼 어둡게 가려진 그들의 깊숙한 곳에서 마침내 한줄기 영혼을 찾아내어 심판의 날까지 정화되게 한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세계대전Z]와 같은 책의 출판을 반대하시는 건가요.

그 사악한 책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 무영체가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영험한 신의 현현이었음을 부정하고 그들을 단지 걸어다니는 고깃조각과 같다고 믿게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그들이 공포와 죽음의 존재라고 주장하며 이들의 존재 저편에서 똑바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영혼의 영원함에서 눈을 돌리게 만듭니다. 이들은 대시련 전의 천박한 공포영화 속 존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이들의 공포와 위협 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들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면 기다리는 것은 심판의 날 우리 영혼에 주어질 영원한 고통뿐입니다. 우리가 걸어 다니는 송장들을 바라보면서 얻어야 하는 깨달음은 공포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와 같음을, 믿음을 저버린 우리의 타락이 얼마나 가공한 것인지에서 깨닫는 그 진정한 공포에 다름 없습니다. 무

그 깨달음은 어떻게 얻으신 것입니까. 시련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나 또한 그대 죄인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혼의 구원을 망각하고 잘못된 믿음 아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대시련이 닥쳤을 때 내 이웃과 친척을 휩쓰는 거대한 신의 분노를 보며 나는 어둡고 축축한 동굴에서 신께 열흘 밤낮으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어찌 이런 시련을 내리시는지 물어봤습니다. 어느날 기도에 지쳐 쓰러졌을 때 나는 그분이 보내신 대천사가 내 어깨를 어루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분은 눈부신 빛으로 나타나 말씀하시길 나의 아들아, 두려워 할 것 없느니라, 나아가 그들을 따르라, 내 너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할 것이다. 그렇게 온 천지를 울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무한한 영혼의 충만함을 느끼고 일어나서 동굴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는 성스러운 사자의 대군무리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나는 내 영혼을 맡기고 신께 빌었습니다. 그 때 그분이 대답하셨습니다. 아들아 이것은 심판이다 내 너를 자유롭게 함이라 너희가 그들과 하나가 될 날이 곧 닥치리라. 내 몸에는 그때 지상의 모든 필설로도 형용할 수 없는 빛이 담겨있었습니다. 나는 두 팔을 치켜들었고 무영체의 대군 가운데 내가 있으며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 나의 사명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공식기록에 따르면 당신은 포트 리 대피소의 방어전 도중 퀴즐링 증상을 보인 것으로 되어있더군요.

그것은 더러운 무리들이 우리의 성스러운 경험을 욕되게 하려고 꾸민 가장 치졸한 거짓말입니다. 나의 깨달음과 구원은 우리의 모든 신자가 공유하는 강철 성벽과 같습니다. 믿는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전도활동을 시작하고 얼마 뒤, [영혼불멸의 빛]의 전신인 [성스러운 이빨의 군대]를 이끌던 당신은 곧 종말이 닥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부정하지 않겠소. 어느 날 우리의 두 번째 회당에서 영적인 만남 도중에 신께서 내게 나타나 석 달 뒤 모든 죽은 자가 땅에서 일어나고 영혼들이 그 그릇에 담겨 마지막 심판을 우리와 함께 받을 거라고 하셨소.

하지만 약속한 기한이 지나도 예언하신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따르던 신자 중 일부가 집단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당신은 잘못 알고있소. 그 때 우리의 성스러운 언행을 기록한 것을 보면 이미 신께서 내게 나타나 좀 더 많은 영혼을 구할 기회를 내게 주시고, 내가 응답할 때까지 심판을 유예하셨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날 거요. 그러나 그 작은 심판은 우리의 맑은 영혼 가운데 믿음이 부족했던 일부를 조금 더 일찍 가려내신 거요. 내가 그 일과 무관하다는 진실은 이미 수차례 명명백백히 밝혀진 바요.

그렇다면 지금 [영혼불멸의 빛]의 믿음은 더욱 완전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대시련을 지나 이제 마지막 시련, 최종 심판을 기다릴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내가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신께 응답하면 그분이 내게 알려주실 겁니다.

무영체를,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말하는 언데드를 상당수 특별한 시설 수용하거나 냉동보관하고 있다는 것도 그런 믿음에 따른 건가요?

그렇소.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공포와 절망에 굴복한 자들은 무영체가 심판에 날에 대비할 수 없도록 그들의 신체를 훼손하고 불태우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소. 나는 이들의 영혼이 다시 돌아올 때, 그 집이 온전하도록 지킬 사명이 있소.

수용시설에 격리된 무영체의 경우 간혹 영혼이 돌아온 경우도 있다고 주장하시지요?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오. 우리 교단의 각종 자료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을 아주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으니 찾아보시오.

하지만 그 경우 대부분 퀴즐링 환자가 일시적으로 회복된 거라고 하는 주장은요.

퀴즐링이란 없소. 모두 완전히 무영체였다 영혼이 정화되어 우리에게 돌아온 거요. 그들은 그 영혼으로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영혼이 연옥을 떠돌던 기억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소.

그렇다면 신자들 가운데 일부가 고의적으로 감염되는 의식을 치른다는 게 사실입니까?

모르는 바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면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 자신의 영혼을 재발견하려는 것으로 생각하오.

하지만 이 무영체들 각각에 보관료를 받고있고, 자진해서 무영체가 되는 경우 보관료와 영혼의구원비용으로 재산헌납을 요구하신 적이 없으십니까?

인터뷰를 중단하겠소. 이런 편견으로 가득찬 기만적인 인터뷰는 더 하지 않겠소.



-----------------------------------------------------------------------------
당신이 묵시록적인 종말영화를 볼 때마다 한번쯤 궁금했던 것들. 그리고 그 가운데 [세계대전Z]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

- 다들 도망가느라 정신 없나? 한몫 잡을 기회일텐데.
- 지구가 좀비에게 완전 접수당했는데 어디서 저 무기들을 만드는 거지? 재료는 어디서 구하고?
- 만약 종말이 닥친 시각에 우주정거장에 있던 우주인이라면 어떻게 하란 거야.
- 핵잠수함 하나 타고 바다로 도망가면...아, 이건 비슷한 영화가 있군.
- 내가 우리 집에서 인터넷질로 좀비 실시간 중계나 보다가 피난을 못했다면?
- 사람들은 전부다 말짱하거나, 아니면 핵무기를 갖고노는 마초들 뿐이군. 그냥 확실하게 '맛간' 쪽은 없나.


아마도 찾아볼 수 없는 것:
- 미국인들이 재난에 닥치면 '진짜' 생각하는 것.
- 우리가 좀비에 대해 느끼는 본능적 애착과 공포의 근원. 그러기에 이 시체들은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 착한 중국인, 쿠바인, 러시아인.....


- 이 작품도 역시 영화로 만든다고 하는데, 일견 쌍수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그렇게 만들어선 쫄딱 망할 확률이 무척 높아보입니다. 가장 어울리는 건 에피소드 한 장면장면을 TV시리즈 한 화씩으로 만드는 거예요. 가능하면 해당 국가에서 한 편씩 만들어도 재밌겠고- 이것의 좋은 점은 대한민국은 무척 싸게 먹힌다는 겁니다. 필요한 건 사람 둘과 황량한 벌판하나. 철조망 약간.

말 나온김에. 이 책에 등장하는 각국의 '우리는 어떻게 놈들을 이겨냈는가?:
미국: MLRS, 랜드워리어, F35, 그리고 코만치 헬기 등등이 총출동한 결전에서 대패. 이후 2차 대전식 전시체제로 전환, 물림방지복과 반자동소총, 그리고 전용 야삽(...)으로 무장한 보병방진을 무기로 반격.
중국: 아마도 바이러스를 맹근 이들. 앗싸리 내전 발발. 결국 민주국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로 거주구역과 미끼구역을 구분하는 '레데커 플랜' 개발. 전 세계로 확산.
로씨야: 10:1 총살의 좀비그라드. 전후 종교수장을 겸하는 짜르가 집정하는 신성제정국가로.
쿠바: 방역 성공. 피난민들의 부를 받아들여 '좋은 국가'가 됨. 현재 중남미 최강대국.
인도&파키스탄: 재난물에서 이들이 해야할 일은 핵전쟁 뿐.
우크라이나: 피난민에게서 감염자를 가려내는 효과적인 방법 개발.
이스라엘: 애저녁에 점령지역 철수 및 국경봉쇄, 해외 유대인 소개.
일본: 오덕이 지배하는 나라. 대 좀비 무공 개발.
브리튼왕국: 고성과 로마시대 성벽에서 중세무기로 무장하고 공성전.
프랑스: 전토 점령당한 후 파리 수복시 지하수로에서 1만 5천명 이상이 희생당한 소탕전 전개.
부칸: 2천만 인민이 땅굴파고 토꼈나 오데로 갔나요
한국: 덕분에 살았다능?


ps: 만델라 캐안습
by 근엄자 | 2008/08/18 19:48 | Egloos Novel | 트랙백 | 핑백(1) | 덧글(28)
트랙백 주소 : http://proust.egloos.com/tb/179855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권총과 전함 : 세계대전 Z at 2008/12/12 20:10

... 좀비물 만화」보다는 훨~씬 공정한 편이겠죠. 덤으로 이미 본편을 완독하고 비슷한 재미있는 읽을 거리가 없을까 하고 꼼지락대고 있는 분들께. 세계 대전 Z World War Z/ 맥스 브룩스 by 근엄자님 이글루 : 본편 뒤에 부록으로 넣어두더라도 별다른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고퀄리티 팬픽. 로메로식 좀비 사태 ... more

Commented by MATARAEL at 2008/08/18 21:40
실제로 세계대전 Z 본편에서 연장된 내용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생생한 묘사와 표현, 풍부한 상상력에 절로 감탄하게 되네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근엄자 at 2008/08/19 18:25
보잘것 없는 글쪽을 읽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흉내는 내 봤는데 별로 안 비슷하네요.
Commented by 쏘른티어 at 2008/08/18 23:08
직접 쓰신 겁니까? 정말 대단하시군요!
재밌게 잘봤습니다!
Commented by 근엄자 at 2008/08/19 18:25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시간과 잡상만 있으면 누구라도....
Commented by 벨제뷔트 at 2008/08/19 00:21
세계대전 Z...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두근두근.
Commented by 근엄자 at 2008/08/19 18:26
'낚였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요-_-; 취향을 좀 탈 작품이라.
Commented by LONG10 at 2008/08/19 08:32
진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보는 내내 '저런 책이 정말 있을까'라는 궁금증마저 들었네요.

그럼 이만......
Commented by 근엄자 at 2008/08/19 18:27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 많이 모아서 뇌수와 살점이 흐르는 동인지나 한번...
Commented by 우와아 at 2008/08/22 22:34
작가가 번외편 쓴줄 알았습니다 존경합니다
Commented by 근엄자 at 2008/08/22 23:13
부끄러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愚公 at 2008/12/25 18:37
링크를 따라오다가 좋은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ps: '기록관리'를 공부하고 있어서 그런지 프랑스 관리의 인터뷰 내용이 인상깊군요.
Commented by 근엄자 at 2008/12/25 22:14
으흑. 전문가의 눈으로 보시면 정말 부끄러워집니다. 이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갯강구 at 2009/03/16 16:31
2탄으로 내셔도 되겠네요,

태클은 아니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아니라 이란과 파키스탄이 전쟁을 했죠.

그리고 중국 잠수함에 근무하는 제독과 병사들은 좋게 묘사하지 않나요?

Commented by 근엄자 at 2009/03/17 00:35
보잘것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키힝.
-아, 그랬었군요....제가 주의깊게 안 읽은 모냥입니..-_-;
중국의 경우에는....뭐랄까 그래도 역시나 바보로 만들기 위해서 등장했다는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에이왁스 at 2009/06/05 14:34
좀 늦었지만, 저도 독자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근엄자 at 2009/06/05 22:23
독자라고까지 하시면 허섭한 걸 써놓고 부끄러워집니다-_-;;;;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제목없음 at 2009/06/25 09:03
소집해제 전에 읽었습니다만 이제 리플답니다
실은 근엄자님의 이 팬픽 덕분에 구입 의향이 30십% 상승했습니다(진담)

2012년(...)까지 WWZ 팬픽의 베스트 컬렉션이 선정된다면 꼭 한국대표로 선정되길 바랄 정도의 고퀄리티...(진짜로)
Commented by 근엄자 at 2009/06/25 19:01
우와아앙 읽어주신것만도 감사한데 뭔가 가당찮은 칭찬까지. 그나저나 소집해게라니, 요원 전우십니까!
Commented by 블루드림 at 2009/09/17 09:39
정말 쓰셨네요. 본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러면 한국편 주인공 "심심하면 수음을 했을 뿐이예요" 뿜었습니다^^
Commented by 근엄자 at 2009/09/17 13:11
저...저는 히키코모리에 편견 같은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22nd at 2009/12/03 17:25
안녕하십니까, 우연히 태그에 태그를 타고 이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잘 쓰셨는데요.

http://www.minumsa.com/zombi/

모 출판사에서 좀비 문학상 응모를 받고 있더군요. 이정도 퀄리티라면 1등도 금방이실것 같은데, 한번 응모 해보심이...?
Commented by 근엄자 at 2009/12/04 15:25
읽어주신데다 분에 안맞는 칭찬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작품감상이니 비평부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꼭 그렇게 보이지도 않고, 게다가 배경도 응모요건이랑 다르고 해서 어디 보낼지도 모르겠으니 천상 새로 써야하는데......자신도 없구요. 그래서 그냥 본문을 세개로 쪼개서 [좀비서바이벌가이드] 응모할까는 생각은 있습니다-_-;;;
Commented by 한스 at 2010/06/06 19:01
- 미국인들이 재난에 닥치면 '진짜' 생각하는 것

이거 매우 무섭네요
Commented by 근엄자 at 2010/06/09 09:54
그런데 그런걸 보기 힘들다보니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
Commented by maxi at 2010/08/20 15:24
정말 오래전에 쓰신 글인데 인터넷 검색하다가 눈을 뗄수없는 퀄에 ㅋㅋ 감동하고 갑니다.
Commented by 근엄자 at 2010/08/22 11:47
으헝 아직까지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Commented by 성준 at 2013/04/25 01:56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근엄자 at 2013/06/23 23:05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