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요즘은 자막까지 "퍼스트 어벤져"라 쓰고 캡틴이라 읽는 짓은 안하는 센스(비슷한 예로는 "D.A.N.C.O.U.G.A, 카루타다!...")가 있더군요. 제목 개명이 어색한 이유가, 바로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느껴진 건 바로 그 “미국대자앙~”이라는 무척이나 시대착오적일 수 밖에 없는 순진한 영웅의 개념이 요즘의 시선과 마찰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주된 고민이 바로 그것이라고 느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 영화는 거의 모든 부분이 어떻게 성조기 닮은 쫄쫄이를 입은 애국적인 영웅이 우리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영화적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 혹은 존재해도 되는지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세계를 정복하려는 변명의 여지없는 나쁜 놈, 붉은해골과 악의 조직 히드라와 맞서 싸우는 스피디한 액션 활극이긴 하지만, 그런 시원시원한 액션이 펼쳐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한 구석에서 “그래, 그 시댄 그랬다구! 그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필요없는 나이브한 시대였단 걸 이해해줘!” 그런 변명 같은 게 들리는 것 같단 말입니다. 물론 시간적 배경에 따라서 달라지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상징성을 인지한다면, 그것이 현 시점에 무용한 것임도 인정해야 합니다. 단순히 그 시점에 유효했단 것으로 변호가 끝나진 않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그걸 보면서 느낀 건 어째서인지, 연민이었습니다. 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순진했던(아마도 착각이겠지만) 시대와 순수한 선의를 행사하는 영웅은, 끊임없이 고뇌하고 영웅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주로 약점에서- 찾아내려고 하는 요즘의 영웅담에서는 오히려 신선한 것이 되어버린게 아니겠습니까. 희극적이기까지 한 그런 역설에서 열심히 세계를 구하기 위한 캡틴의 활약은 어떤 숨은 의도도 가지지 않은 순수한 정의의 신뢰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만 이 사나이에게 연민과 같은 애정을 느끼게 되는게 아닌가 하구요. 어쩌다 상황이 꼬여 상대적인 악이 되고만 인간적 악당을 처치하는 문제투성이 히어로가 아니라 진짜 착한 영웅 말이지요. 우와 이런게 얼마만이야....그런 영웅이 그가 이전에 활약한 선전만화 속이 아니라 조금 더 현실적 색채가 가미된 공간에 자리잡을 때, 그런 정의도 좀 더 현실적인 것이라는 안도감마저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말라깽이 스티븐 로저스가 뽕맞고 미국대장이 되어도 여전히 그에 대해 어떤 즐거운 연민을 품게 되는 거지요. 그래, 캡틴이 웃긴 복장에 방패들고 날뛰는 정신나간 얼간이라는 건 우리도 알지.....하지만, 그는 캡틴이야!
그런 점에서 전시공채쇼 얼굴마담이 된 레트로 복장의 캡틴은 이 영화에서 꽤나 의미심장한 부분임에 분명합니다만, 사실 어딘지 좀 멋쩍은 변명처럼 들리는 부분도 있어요.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레트로한 40년대를 복각하려고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분위기는 아주 옅게 느껴집니다. 그건 캡틴도 마찬가지로, 근육이 대빵만해졌지만 캡틴의 고유의 마초성은 찾아보기 힘들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키는 순진한 청년처럼 느껴진단말이지요. 영화판 [스콧 필그림]을 보셨다면 크리스 에반스가 마초냄새를 풍기지 못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건 어쩌면, 이제는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신시대적 영웅의 자장, 그러니까 때로는 그들이 지키는 인간보다도 연약한 슈퍼히어로의 세계에서, 대책없이 순진한 영웅 캡틴 아메리카가 이제는 지나간, 아니 사실 정말 있었는지도 불분명한 그 시대의 영웅을 힘겹게 지탱하려는 노력이 덧없고도 한편으로는 우리도 믿고 싶어져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그렇지만 왠지 후반부 내지는 전체가 고스란히 어벤져스 예고편으로 바쳐진 느낌은 지울 수가 없.... 아이언맨 1편부터 일관성있게 그래프가 우상향한 듯. 하지만 차식들아, 진짜로 어벤져스란 말이다!!!!!
- 캡틴의 능력을 적당히 제시하는 능숙함도 느껴집니다. 혼잡한 거리에서 택시를 따라잡을 수는 있지만 비행기는 따라잡지 못하고, 일당백의 용사지만 정말 일대 백의 상황에서는 중과부적인 인간의 몸을 가진 영웅. 그런 팬덤의 공인된 능력치를 딱 적당히 제시할 줄 아는데, 이건 아마도 수십년동안 만들어진 코믹북 히어로 영화의 관록으로 봐도...
- 오오 휴고 위빙은 다음 작에도 나오겠군. 좋았어.....(사실 제프 브리지스나 미키 루크, 팀 로스에 비하면 휴고 위빙의 레드스컬은 배우낭비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